2차

[월야환담/언라이트ver. 합작]

룽크 2017. 12. 7. 19:57

 1312년 「속죄」

(작중에서는 1467년으로 서술되어 있지만 오류가 있기 때문에 임의대로 연도를 변경했습니다)

 

 

 그는 깨어날 때마다 늘 알 수 없는 곳에 있었다.

 

그가 잠들어 있을 때, 누군가가 그를 옮겨 놓는 것일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몇 십 년 만에 깨어난 것일까. 유다는 가만히 생각해본다. 몇 십 년이 흐르든, 몇 백 년이 흐르든, 흐려져 가는 기억 속에서도 오롯이 남아있는 아주 오래된 기억이 있었다. 유다는 깨어날 때마다 그 기억을 곱씹었다. 다시 잠들기 전까지, 흡혈귀들을 학살하는 중에도 계속해서 곱씹었다. 그리움이란 단물이 빠질 때까지.

 

 

 

 "조심해서 다녀오세요."

 

 원정을 떠나기 전, 그동안 기사단에 의복을 지원했던 한 장인의 길드에 들렀을 때 지인이 한 말이었다. 그녀는 목소리를 낮추어 속삭였다.

 

 "아시잖아요. 요새 소문이 좋지 않아요-"

 

 길다란 검은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 늘어뜨린, 붉은 십자표시가 있는 기사복을 입은 기사가 그녀의 말에 물류장부를 확인하던 손을 멈추었다. 아름다운 얼굴에 그늘이 지는가 싶더니 그는 곧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보였다.

 

 "괜찮습니다. 무사히 다녀올테니까."

 

 사실 그렇게 말하는 그에게도 확신은 없었다.

 

 옛날 굳건한 위세를 떨치던 템플기사단은 서서히 몰락의 길을 걷고 있었다. 처음에 여행자들의 수호를 위해 만들어졌지만 세력을 키우면서 여러 일에 손을 대었고, 그 과정에서 국왕의 미움을 산 것이 원인이라면 원인이었다. 기사단을 보호해주던 교황은 지는 달이 되어버린지 오래. 이대로라면 기사단이 어떤 최후를 맞을지 불 보듯 뻔했다.

 

 그래서 그들은 재기의 수단이 될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해야 했다. 설령 그것이 터무니없고 위험한 일일지라도.

 

 프레스터 존의 탐색 여행.

 

 이번 원정도 결코 만만치 않을 것이다. 그는 생각했다.

 

 실제로 그 원정은 대단히 위험한 고비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사막을 횡단하고 우거진 숲을 지나 도적떼와 다른 국가의 병사들에게 위협을 받으면서 전진했지만,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전설이나 다름없는 한 나라를 찾는다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들은 방황하고 헤매었다. 시간이 갈수록 기사단에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의 동료들은 탈수증과 굶주림으로 사경을 헤매다 시체가 되어 길바닥에 널부러졌다.

 

 

 

 몇 년이 지나자 교황청에서는 원정을 나간 기사들이 전멸했을 것이라 결론을 내렸다.

 

 “애초에 불가능한 원정이 아니었던가?”

 

 원탁에 빙 둘러앉은 사제들과 이단 심문관 중에서 바티칸 사제들의 로브 후드를 눌러쓴 금발의 사제가 말했다.

 

 “만의 하나 무언가를 발견했었다면, 더 좋을 뿐이었다.”

 

 맞은편에 앉은 남자가 검지 손가락을 세워보였다. 홀 안의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무엇을 찾아서 오든 기사단 전체를 숙청하리라는 것은 변함이 없었다.

 

 “멍청했네. 자크?”

 

 사제가 홀 안쪽에 무릎 꿇려있는 남자에게 조소를 지었다. 심한 고문으로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는 남자는 있는 힘을 다해 사제

를 노려보았다.

 

 “무례하군. 그들의 의지를 그런 식으로 폄하하다니.”

 “후후. 이런, 무례를 용서하게. 생각해보니 자네의 화형식도 얼마 남지 않았지?”

 

 옛날 기사 단장이었던 자크라는 남자의 눈에서 빛이 사그라들었다. 눈앞으로 많은 일들을 함께했던 기사들의 모습이 지나가는 듯 했다.

 

 그 때, 홀 안으로 병사 하나가 달려 들어왔다.

 

 “돌아왔습니다!”

 “뭐?”

 “원정을 떠났던 자가 돌아왔습니다!” 

 

 돌아왔다는 기사는 어깨에 커다란 흑색 관을 짊어지고 있었다. 십자가가 새겨져있는 그 관은 대단히 오래되고 정교한 비술로 봉인이 되어있는 상태였다. 기사는 관이 프레스터 존의 유해를 담은 성궤라고 믿었다. 같이 원정을 떠나 관을 발견했던 동료들도 같은 믿음이었다. 그 믿음 하나로 죽어가는 동료들의 시체를 밟으면서, 그들이 마지막까지 전하려 했던 것을 지고 왔다. 이걸로 기사단이 다시 살아날 수 있다면 자신들의 죽음은 아무래도 좋았다.

 

 그들은 너무나 순진했던 것이었다.

 

 그러나 성궤라 믿었던 관의 봉인을 풀고 그것을 열었을 때, 관에서 나온 것은 마물이라 불러도 좋을 무언가였다. 그 것은 판도라의 상자를 빠져나온 온갖 악처럼 관 속을 빠져나와 어딘가로 사라졌고, 관에 남아있던 시체에서는 암울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마침내 살아 돌아온 기사에게는 벌이 내려졌다.

 

 

 

 유다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자신의 몸속을 파헤치고 그녀가 들어온 순간부터 그녀의 목소리는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깊은 암흑에서부터 흘러 나왔으며 유다는 그 속으로 서서히 잠겨갔다. 그는 자신을 붙잡으며 있는 힘을 다해 저항했다.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그는 몰랐다.

 

 “괴로운 기억이군.”

 

 팬텀이 말했다. 자네가 오래된 일을 기억한다는 그것, 굉장히 이질적이어서 재미있고 당황스럽다고.

 

 “잊는게 훨씬 편하지 않겠어?”

 

 어리석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유다는 답했다.

 

 “네가 너의 과오가 담긴 지난날을 기억하는 것과 같다.”

 

 팬텀은 더 이상 유다에게 기억을 논하지 않았다. 그를 향해 달려드는 쇠사슬을 피해 사라지는 진마를 보면서 유다는 한숨을 쉬었다.

 

 

 속죄라는 것이 그를 갉아먹는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