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맛 쓰레기통
[드래곤 브리딩] 로그 셋_엔딩 본문
20150601
현자의 정원은 모두가 떠나가는 순간에도 아름다웠다. 다른 이들이 서로 작별을 하며 마음 한 켠에 아쉬움을 담고 있을 때도 정원은 아름답게 빛이 나서 눈이 멀어버릴 것 같았다.
태고의 아름다움. 그것은 어떤 순간에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제 혼자서 기나긴 삶을 이어가고 있다.
그것은 그도 마찬가지다. 이 만남은 정말 스쳐가는 한 순간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사막의 색을 가진 엘프는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다.
[괜찮으신가요, 아버지.]
숲을 닮은 용은 제 부모노릇을 해준 엘프에게 물었다. 물었다기 보다는, 단순한 위로의 표시였다.
"음..... 또 언제 이런 푸른색을 볼 수 있을까 하고 있어요."
눈을 감고 엘프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엘프이되 자연을 가까이하지 못하는 엘프는 최대한 많은 기운을 받아가려 애를 쓰는 것 같았다. 그 모양새를 초록색 용은 조용히 지켜보았다.
눈꺼풀 뒤로 잔상들이 지나간다. 처음 현자의 정원에 발을 들인 그는 모래투성이였다. 지저분한 몰골의 그를 다른 이들은 상냥하고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그리고 시작된, 짧은 시간.
알을 안아들고 나서 나눈 기쁨, 그것은 아이들이 자라날 때마다 배가 되고, 몇 곱절씩 크게 부풀려져서, 결국에는 정원을 꽉 채웠다. 서로 주고 받은 실없는 농담들. 우리끼리의 소소한 이벤트. 크고 작은 사고들.
엘프는 매일 버릇처럼 별을 보았다. 사막에서 보는 것만큼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다만 여기서는, 이곳에는 함께 별을 보면서 무언가를 나눌 친구가 있었다. 경험이 있었다.
그들은 별이야- 어떤 때는 별보다도 더한 빛을 내서 진짜 별을 묻히게 만들지.
별은 특별해. 그들이 나에게 그러듯.
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이게 무슨 낯간지러운 생각이람."
그는 중얼거렸다. 눈을 뜨니 벌써 한밤중이다. 그의 옆에는 어느샌가 익숙해진 초록빛이 있었다. 용은 제 아버지의 몸을 감싸고 둥글게 누워있었다. 손에 닿는 비늘이 단단하고 매끈매끈했다. 그의 용은 잿빛 알을 깨고 나온 뒤로 부터는 별다른 외모의 역변은 없이 자랐다. 그의 사슴뿔이 커지고 좀 더 나무를 닮게 되었으며, 갈기가 풍성해지고, 발톱이 날카로워지고 하는 것들은 그저 익숙해지면 될 일이었다.
편안하다. 문득 그런 생각을 했다.
"셸, 자요?"
[그럴 뻔 했습니다만, 아버지가 일어나시는 바람에 깼습니다.]
"저런."
엘프는 미안한 기색이 아니었다. 애초에 용도 딱히 그를 탓하는 것이 아니었다. 엘프는 잠깐 기지개를 펴고, 다시 입을 열었다.
"다들 가버려서 이제 몇 명 남지 않았죠. 시간이 너무 빨리 가버려서 제대로 말을 못했는데, 우리도 결정을 할 시간이에요."
용은 조용히 그의 말을 경청하고 있다가, 그의 깃털달린 꼬리로 엘프의 등을 가볍게 쳤다.
[말씀하세요.]
"우선 선택지는 둘이에요. 저랑 같이 갈래요, 아니면 여기 남겠어요?"
[아버지가 누누히 말씀하시지 않았나요. 저를 데리고 여행을 할 거라고.]
"아 물론... 그렇게 말하긴 했지만 셸의 의견을 물어본 적이 없으니까 하는 얘기에요."
저는 당신의 의견을 존중해요- 엘프가 웃었다. 용은 묘한 웃음에 한숨을 쉬었다.
[저는 여행을 가는 쪽이 좋습니다. 말마따나 경험하는 것이 좋지요.]
"그거 혼자서인지 저와 같이인지 모르겠는데요."
[아직은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기특한 것. 엘프는 그리 생각하며 용의 등을 쓰다듬었다. 자신의 머리처럼 덥수룩하지만 그와는 다르게 갈기에 윤기가 있다. 부드럽다.
[아버지는 바라셨지요. 제가 그대의 마을에서 다른 이들의 길잡이가 되어주기를. 저는 빛이니까 그리할 수 있다고 하셨지요.]
용은 자신의 발톱으로 영롱한 진주빛을 내는 여의주를 톡톡 건드렸다. 여의주는 환하게 빛을 내며 공중으로 잠시 떠올랐다가, 다시 용에게로 날아들었다. 빛의 구- 어둠을 밝히는 그의 능력에 어울리는 것이었다.
"어.. 있잖아요. 굳이 그러지 않아도 돼요. 마을에만 있는 게 아니라, 원한다면 우리끼리 빠져나가도 뭐라 하지 않을...."
[......괜찮습니다. 사실 저는, 스스로 다른 인연을 찾아갈 준비가 되지 않았어요.]
그것은, 지금 제가 떠나보내는 만남 때문에 그렇습니다. 어려운 말로는 자정작용이라고 하던가요. 저는 아직 어려서 이미 붕 떠버린 감정을 다시 가라앉히는 것에 오랜 시간이 걸린답니다. 그래서 되도록이면 아주 낯선 인연들은 좀 더 시간을 보낸 뒤에 만나고 싶습니다.
용은 그리 말하고 살며시 눈을 감았다.
[아시겠지요.]
잠시동안 엘프는 멍하니 앉아있었다.
자신의 손에 키워져서 저렇게나 닮은 걸까?
".......마을에 돌아가면 셸을 잘 소개시켜 줄게요. 좋은 아들이라고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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