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딩맛 쓰레기통

[드래곤 브리딩] 로그 넷 본문

1차

[드래곤 브리딩] 로그 넷

룽크 2017. 12. 8. 00:19
20150905





셸의 등에 타고 있으면 안락한 기분이 든다. 하얗고 노란 갈기는 가늘지만 튼튼한 실과 같아, 기분 좋게 얼굴을 간질인다. 바람에 그는 유연한 몸으로 유선을 그리며 날았다.

대륙은 광활하다. 대륙 위의 하늘도 마찬가지다. 셸과 나는 하늘을 나아가며, 혹은 한 자리에 머물며 대지와 하늘을 바라본다. 서늘한 새벽 공기와 저녁 놀의 공기는 전혀 다른 것이다. 한 장소 안에서도 이리 다양한 변화가 있으니, 그저 떠도는 것만으로 세상을 다 보았다 할 수 있을까. 세상은 상상 이상으로 넓고 아름다움에 틀림 없다.

나의 어린 드래곤 친구는 제 눈동자에 무엇을 담아내고 있을까? 감탄이 지나친 탓일까, 그는 여행을 하면서 자주 탄식하고는 했다. 나는 셸을 보면서 웃었다. 그는 무뚝뚝하고 고지식한 아이였지만, 천성이 상냥했다. 자신이 느낀 감상, 감정을 그냥 흘러내리게 두는 아이가 아니였다. 계속해서 곱씹으며 눈빛 속에 담아두었다. 그가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면서, 자신을 더 나은 모습으로 가꿀 것이라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현자의 정원에만 머무르지 않기를 잘한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인간의 도시에서 이렇게 맛있는 저녁을 먹을 수도 있잖아요. 셸은 닭튀김을 씹으며 말했다.

나는 마늘을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간장에 졸여 튀긴 듯한 마늘이 맛있었다. 도시의 야시장은 붉은색, 녹색, 흰색 등불로 빛이 났다.


"맛있다! 나도 이런 여행은 처음인데. 재밌네요."


여행을 하면서 셸에게 반말을 하는 등 더 편해질 수 있었다. 현자의 정원에서는 어색한 아버지와 아들이었는데. 여행이란 굉장하다.


"정원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었어요. 쇠로 된 열기구를 닮은 비행선이나, 사람들이 모여 북적대는 시장, 사는 마을.... 아, 이렇게 맛있는 도시락을 먹을 수 있다는 건 못 들었는데."

"그렇지요. 하지만."


셸은 잠시 젓가락질을 멈추고 어느 곳을 보았다.


"어디나 행복한 모습이지는 않습니다."


그의 시선 끝에는 누더기의 아이가 몸을 웅크리고 골목 입구에 앉아있었다. 셸은 미간을 찌푸렸다.

너는 무슨 생각을 할까. 나는 궁금했다.


"그건 그렇죠."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 아이도 그렇고, 지금껏 만난 이들도 그렇고. 생명은 태어나서 왜 행복하지 못할까요."


정말 그 다운 이야기라 나는 웃었다.

내 몫의 도시락을 다 비우고, 나는 골목의 아이에게 도시락을 하나 사주었다.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저는 괴롭습니다."


그가 이리 말하는 건 성정이 너무 착한 탓이었다.

나는 베푸는 것이 일상인 가족에게서 태어나고 살아왔다. 사막의 여행자들을 안내하고 편히 여행할 수 있게 돕는다. 타인에 대한 배려가 익숙했다.

허나 셸은 아니다. 긍지 높고 고고한 드래곤이다. 그가 아무리 다른 드래곤들과 다른 성정이라 해도, 우리가 서로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은 생각보다 적었다.

아이를 돕는다는 것도 그렇다. 셸은 나에게 아이가 왜 저런 상황인지 알고 싶고, 그를 없애길 바랐다. 내가 단순히 그 상황을 돕는다면, 그는 그 상황을 만드는 원인을 제거하고 싶어한다. 스케일이 더 크다. 사막을 건너게 돕는 우리 일족에게 사막을 없애거나 아예 괜찮은 길을 만들어 버리는 것이 빠르다고 할 정도였다. 드래곤이니까. 그리 쉽게 생각해버리는 게 아닐까. 나는 고민했다.

사실 그것은 능력의 차이였다. 살아가는 방식의 차이였다. 나든 녀석이든 죽었다 깨어나도 공감은 할지언정 이해하지는 못한다. 자신은 자신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내가 녀석의 방식을 고지식하고 글러먹은 멍청한 거라고 생각할지라도 말이다.

그러나 내가 걱정하는 건, 셸의 마음에서 커지는 근심이다. 아무리 고민하고 노력해도, 드래곤의 권능을 이용해도 그가 할 수 없는 일이 생길 게 분명하다. 그 때 셸은 어떻게 될까.

나는 미리 그에게 마음을 비우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있었다.

다른 생명들이 어떻게 스스로 살아가는 지 말해줄 필요가 있었다.






여행을 하며 가르쳤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왜 함부로 물을 만드는 마법을 쓰면 안 되는 지.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외면한다는 죄책감을 버리는 법. 자그맣게나마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마음. 자신을 소중히 할 수 있는 방법을. 그는 알아야 했다.

빨리 나아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괴로워요?"


셸이 고개를 끄덕였다. 풀밭에 누운 녹색 드래곤은 깊이 숨을 내쉬었다. 규칙적으로 그의 몸이 올라갔다 내려갔다.

나도 리듬에 맞추어 숨을 쉰다. 눈이 절로 감긴다.


"셸. 앞으로도 많은 걸 볼테지요..... 하지만 의연해질 필요가 있어요.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왜 불행한가, 혹시 내가 무엇을 잘못하고 있기 때문인가, 이런 의문은 갖지 마요."


잠깐 동안 리듬이 깨진 듯 했다.


[아버지.]


그의 목소리가 머릿속에 울렸다. 어쩐지 슬픈 울음이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에는 한계가 있어요. 당신은 나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겠지만.. 그럼에도 한계는 어느 순간 닥칠 거예요."

[......알고 있습니다.]


금방이라도 그는 '그게 뭐가 나쁘지요' 라고 볼멘 목소리로 되물을 것 같았다.


"전 말이죠, 당신이 어떤지 걱정할 권리가 있답니다. 정 그렇다면 말이라도 들어봐요."

[........]

"셸의 생각에 늘 간섭할 수는 없어요. 멍청한 짓이란 건 나도 알구요. 그냥... 소소한 도움이라도 나쁘지 않아요. 중요한 건 당신을 소중히 하는 거죠. 스스로를 다른 이를 도울 수 있는 빛으로 여긴다면, 빛을 잃지 않게 자신을 돌보라는 얘기예요."


그가 그르렁거렸다.


[망가진 빛은 무엇도 밝힐 수 없다.. 그런 얘기군요.]

"똑똑한 녀석일세."

[아버지가 얼마나 순화해서 말한 것인지 짐작이 갑니다.]


뜨끔했다. 짐짓 헛기침을 하자 녀석이 하품을 했다.


[주무시죠.]

"......네."


내 말을 제대로 듣기나 한 걸까.

나는 한숨을 푹 쉬고 눈을 감았다. 눈꺼풀 뒤로도 별이 떠오른다. 눈이 아팠다.

내 머리가 아픈 것 같다.






'1차' 카테고리의 다른 글

[By the sea] 로샨코넬 50일  (0) 2017.12.08
[By the sea]  (0) 2017.12.08
[드래곤 브리딩] 로그 셋_엔딩  (0) 2017.12.08
[드래곤 브리딩] 로그 둘  (0) 2017.12.08
[드래곤 브리딩] 로그 하나  (0) 2017.12.08
Comments